일본 생활/게스트하우스 생활

[도쿄 게스트하우스 일기] 왜 해외에서 한국사람을 만나면 반갑지 않은걸까?

도쿄 게스트하우스 알바생 2024. 3. 1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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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 프론트 스태프로 일하다보면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다양한 특징을 한 눈에, 오랫동안 볼 수 있다. 그 중 동/서양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점 중 하나는 해외에서 자국인을 만났을 때의 마음이다. 

 

일반화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서양 사람들은 처음 보는데도 거리낌 없이 먼저 말을 걸며, 금방 대화가 이어지기 시작한다. 반대로 동양 사람들은 아무래도 모르는 사람끼리, 특히 자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을 보았을 때 행동을 조심하게 되고 눈치를 보게 된다. 웬만해서는 이야기도 잘 하지 않는다. 

 

이 얘기를 내 한국 친구한테 하니

 

"왜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해야 해?"

 

라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한국인만 그런 줄 알았더니, 일본, 중국, 대만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더라. 심지어 이 사람들이 서양 사람들과 영어로 이야기하는데는 거리낌이 없는데, 꼭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는 행동, 말투 등에 신경쓰고 눈치를 보고 있다는 움직임을 느꼈다. 

 

나 역시도 그렇다. 신주쿠나 시부야 부근은 한국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가게나 식당, 이자카야에서 한국어가 들려오면 자연스레 눈길이 가고 눈치가 보이게 된다. 

 

나는 지금은 이 곳에 살고 있지만, 나도 한국 친구랑 도쿄 어딘가에서 만나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저 사람도 한국인인가봐.." 

 

라는 이야기가 종종 귀에 들어온다.

 

이런 경험을 다른 게스트하우스 스텝 친구에게도 이야기했더니, 비슷한 답변이 들어온다.

 

"확실히 그렇네.. 나도 외국 갔을 때 일본사람 보면 엄청 반가운 느낌은 들지 않을 것 같아"

 

여행을 가서도, 워킹홀리데이를 가서도 자국민을 만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동아시아 나라 국민의 공통된 마음인 것 같다. 오죽하면 워킹홀리데이를 가서도 '한국 사람을 가장 조심하라'는 말이 있지 않나? 일본도 그런 비슷한 말이 있다고 하더라. 

 * 다만, 여행이 아닌 워킹홀리데이에 한정한다면 대만과 중국은 해외에서도 끈끈하게 뭉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아직까지 왜 그런지에 대한 답은 내지 못햇다.

 

심리학적인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을 말하자면 각자의 공동체(중국, 일본, 한국, 대만 등)에서 빠져나왔기에 외국에서는 그 공동체의 관습, 문화,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벗어던지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혹은 해방이 주요한 '여행'이기도 하고, 그만큼 자국의 공동체 문화가 은연중에 스트레스로 다가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3월 중순의 어느 날, 때에 맞지 않게 거센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면 자연스레 생각나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야끼토리'(닭꼬치)에 하이볼이다. 우리 집 바로 옆 건물에는 야끼토리 집이 있는데, 맛과 가성비가 모두 좋아 오픈 시간 때부터 가게가 가득 차는 곳인데, 이렇게 비가 거세게 부는 날까지 설마 사람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픈 시간에 맞추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한 명도 없었다. 

 

가게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맞이해주신다

"혼자세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비도 많이 오는데, 오시느라 힘드셨겠어요"

 

"아, 제가 바로 이 옆 OO건물에 작년부터 살고 있는데, 오늘 생각나서 왔어요"

 

"OO건물? 뭐야, 바로 옆이잖아! 왜 이제 오셨어요! 하하" 

 

사실 이전에도 혼자, 친구랑 몇 번 온적 있으나 그 땐 너무 바빠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신경써주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나는 이 근처 호스텔에서 일을 한다고 했고, 주인 아주머니도 호스텔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호스텔은 가격은 어때요? 필리핀 사람도 많이 오나요?"

아주머니는 필리핀에서 일본으로 온 지 19년 된 분이라고 하신다. 몸은 일본에 있지만, 마음은 필리핀에 두고 있으실 때가 많다고 하신다.

 

 

오히려 나는 메뉴판에 한국어가 쓰여져있는 것을 보고 아주머니께 물었다.

"전에 없던 한국어 메뉴판이 생겼네요? 여기도 한국분들 많이 오시나 봐요!"

 

나도, 우리 집 바로 옆에 한국 분들이 찾아주는 가게가 있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네, 요즘 많이 오세요. 구글 맵 리뷰도 좋게 써주셔서 저희는 너무 감사하죠"

 

고국을 떠나 정착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대화주제는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일본'이 아닌, 자연스레 자신의 나라인 '필리핀'과 '한국'이 되었다. 이 후에도 고국 이야기를 꽤 이어나갔다. 

 

 

해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자주 듣는 말이 몇 가지 있다.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데, 그냥 한국으로 돌아와서 살아!"

 

한국의 생활인프라는 정말 훌륭하고 효율이 참 좋다. 같은 능력에 같은 월급을 받는다면 생활비도 저렴해 일본보다 돈을 모으기도 쉬운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 사회가 나에게 가져다주는 스트레스가 있었기 때문에 외국으로 나왔다. 

 

이런 나의 감정에 공감하는 어떤 친구는 이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도쿄에 한국사람 별로 없는 이자카야나 관광지 어디 없어?"

 

한국 사람이 가급적 없는 곳으로 여행을 가고자 하는 심리는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까? 한국이 좋지만, 한국의 공동체로부터 잠시 벗어나고 싶은 마음. 우리는 지금의 생활 환경을 아주 효율적으로 구축해 놓았지만, 그 반대급부로 공동체를 유지시켜나가는데 모두가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그 정도가 더하여 외국으로 나왔지만, 필리핀 출신 주인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고향인 고국을 그리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인 것 같다.

 

 

주문한 야끼토리가 나오고 이제 막 먹기 시작하는데, 문이 드르륵 열린다. 

"여기 맞아?"

"맞는 것 같은데? 저기 야끼토리 있잖아"

이 비오는 날에 다른 한국 분들이 이 곳을 찾아왔다. 주인 아주머니와 나는 서로 옅은 미소를 짓고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한국어 메뉴판이 있다고 하지만, 주문은 별개의 영역이다. 한국 분들이 주문에 어려움을 겪으셔서, 내가 도와줘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주인 아주머니가 자연스레 내 소개를 하주며 물꼬를 터주었다.

"he is korean also"

그제서야 그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야끼토리 주문을 도와주었다.

 

"일어를 잘하시네요, 도쿄에 여행오셨나요?"

 

"아, 아니요! 저는 이 바로 옆에 살고 있어요, 하하"

"우와, 부럽다. 저도 다음 달에 직장 그만 두는데 일본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더라고요.."

 

외국에 나가면 사람들이 모두 제각각의 마음가짐을 가지며 살아가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특히 민족을 강조하는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그 정도가 더하다고 생각한다)

 

호주와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면서 많이 들은 이야기는 '한국사람하고 웬만하면 만나지도 말고 말도 섞지 말라'고 한다. 그것이 주는 편의와는 별개로 대부분 한국이라는 단일 공동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 마음으로 호주와 일본에서 살아왔지만, 요즘은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와 '해외에서 한국사람을 만났을 때 반갑지 않은 이유'에 우리 사회의 공동체가 주는 스트레스가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 스트레스가 줄어든 탓인지 그것만을 기준으로 외국에서 한국사람과 절대 이야기를 섞지 않는다는 철칙은 지금은 접어둔 상태이다. 

 

그렇게 새로운 세계에서의 삶을 동경했지만, 막상 나오고 보니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나약하고 갈대풀같이 쉽게 흔들리는 것인지, 꼭 몸으로 겪어봐야 아는 내가 어떨 때는 미련하기도 하다

 

 

야끼토리 집은 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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