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생활/도쿄 가이드

알고나면 더 재밌는 도쿄 아사쿠사 센소지 여행!

도쿄 게스트하우스 알바생 2023. 4. 2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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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쿠사는 연간 3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는 세계적인 관광지입니다.
 
코로나 이전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 총합이 1500만 명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사쿠사에 어떤 의미가 있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까요? 저도 아사쿠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 이유를 더 알고 싶어 도쿄 그리고 아사쿠사 센소지에 대해 더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아사쿠사 센소지의 유래

아사쿠사 센소지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인 기원후 600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사쿠사(浅草)는 우리나라 말로 하면 '얕은 풀밭'이라는 뜻입니다. 센소지(浅草)의 '센소' 역시 아사쿠사와 한자가 같은데요
이는 일본식 발음으로 읽냐 한자어로 읽냐의 차이입니다. 결국 '얉은 풀밭'이라는 의미는 똑같은 것이죠.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곳은 옛날에는 풀만 무성한 곳이었습니다.
 
아사쿠사 옆에는 지금의 스미다강으로 불리는 강이 있었는데요, 그 곳에서 형제 어부가 고기를 잡다 정체불명의 불상을 건지게 됩니다.
 
어부는 고기잡는데 도움도 되지 않는 이 불상을 강에 던저버렸지만, 어디를 가도 계속 이 불상이 잡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여긴 형제 어부가 토시중지(土師中知)라는 중에게 (이름의 유래에는 설이 있음)이 불상의 정체를 물어보니 토시중지 왈
 

"이 불상은 관세음보살의 불상이다"

라고 하였고, 영엄한 기운을 가지고 있기에 잘 모셔야 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어부 형제는 이 불상을 강 근처에 풀로 지은 집에 모셔놓았다고 합니다.

물고기를 잡는 어부 (출처 : 센소지 공식 사이트)

 
그런데, 불상이 정말 영엄한 기운을 가지고 있던 것일까요?
 
불상이 모셔진지 얼마 되지 않아 그 근처에는 소나무가 천 여 그루가 생기고 금빛 용 떼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 일은 주위에 소문처럼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그 영엄함을 몸소 느낀 어부 형제와 토시중지는 평생을 이 불상을 모시는데 전념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센소지는 '금룡산'(金龍山 - 일어로 발음하면 킨류잔)이라는 절의 사호도 생기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센소지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센소지가 영엄함을 떨치게 된 계기

일본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은 알고 계시겠지만, 이 지역은 1600년대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이 도쿄를 수도로 삼기 전에는 '에도'라고 불리는 평범한 시골마을, 아니 늪지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임진왜란을 일으킨 사람으로 유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경쟁자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늪지대로 유배를 보냈는데, 그 유배지가 지금의 도쿄인 것이죠.
 
그러나 집념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천하를 지배할 날을 기다리며 쫓겨나게 된 에도에서 세력을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세력을 키운 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전쟁을 벌일 준비를 마치게 되고, 결전의 날이 다가오게 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 곳 센소지에서 참배를 한 뒤 전쟁에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무찌르는데 성공하게 되고 도쿄를 중심으로 한 '에도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이 전투가 일본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배우는 역사 중 하나인 '세키가하라 전투'입니다)
 
그렇게 한 시골마을의 영엄한 절로 있었던 센소지는, 수도가 된 에도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의 정식 참배 절로 격상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이 곳 근처에 쌀 창고를 짓게 되는데, 그 당시 쌀은 돈과도 같았던 점을 감안하면 전국에서 사람들과 물자가 몰려들게 되죠.
 
그렇게 에도시대의 개막과 함께 센소지는 전국적으로 참배객이 늘어나게 됩니다. 
 


여러가지 부침도 겪었지만..

그러나 옛날 일본에도 재난과 재해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목조건물이 많았던 특성상 화재에도 취약했고, 그 당시에도 지진은 늘 끊이지 않았던 일본이었죠. 
 
지금의 상점가인 나카미세도리와 오층탑 등 절의 시설들은 몇 차례의 화재로 소실도 되고, 전쟁으로 부서지기도 하죠.
 
에도시대가 저물고 메이지유신이 단행된 뒤 새로운 도쿄 정부가 불교 흔적을 없애기 위해 자료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는 등 이 곳도 여러 부침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그 터와 역사만은 당시 에도, 그리고 도쿄 시민들의 힘으로 유지가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전쟁이 끝나고 일본도 전국적인 재건사업에 돌입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아사쿠사 센소지는 대부분 전쟁 후 지어졌다고 보아도 됩니다. 
 
전쟁 후 물자가 부족했던 일본에서 민간기업의 지원으로, 시민들의 노력으로 센소지는 모습을 다시 되찾게 되고 지금은 도쿄에서도 에도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절로, 일본 느낌 물씬 나는 거리와 기념품이 많은 곳, 관세음보살에게 참배를 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대략적인 역사 설명은 이렇게 마치고 센소지의 시설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카미나리몬

카미나리몬은 관세음보살의 문으로 정식명칭은 ''입니다. 정면에는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뇌문'이라고 쓰여져있지만 뒤에는 정식명칙인 '풍뢰신문'이 쓰여져 있습니다.
 

 
천하태평과 오곡풍양을 기원하는 번개의 신과 바람의 신이 문 양쪽에 있습니다. 
 
이 문은 센소지로 들어가는 문으로 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파나소닉의 지원으로 재건되었습니다. 파나소닉 창업자인 마츠시타 코노스케씨가 병이 낫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참배를 했다가 정말 나아졌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에도시대에는 세키가하라 전투에 앞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참배하고, 전쟁 이후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인 파나소닉과도 연관이 있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나카미세도리

카미나리몬을 들어서면 센소지 본당으로 가는 길에 길게 늘어서있는 상점가를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나카미세도오리'입니다. 나카미세도오리는 카미나리몬과 센소지를 잇는 약 250미터 길이의 상점가입니다. 
 
시초는 에도시대에 이 곳을 청소하고 관리하던 사람들에게 가게를 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며 상점가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이후 도쿄 정부는 이 곳에 있던 가게의 철거를 명령했고, 그 이후 벽돌로 만든 서양식 점포가 들어서는데 그 모양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 상점가도 지진과 전쟁의 화마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지진과 전쟁으로 무너졌고, 지금의 모습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복구된 모습입니다. 
 

 
나카미세도오리는 에도시대 때부터 장난감과 과자, 선물세트 등을 팔던 곳으로서 일본을 대표하는 상점가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상점가로서는 일본 최초로 방범 카메라를 설치한다거나, 셔터에 그림을 그려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등 일본 내에서도 여러가지 시도를 먼저 하는 곳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이 곳에서 가장 유명한 디저트는 닌교야끼(인형모양 빵)입니다. 맛은 우리나라 만쥬랑 비슷한 것 같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인 1868년 문을 열어 지금까지 운영하는 가게도 있습니다. 원래는 1675년에 문을 연 튀김만쥬가게가 가장 유명했으나 코로나 적자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폐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새삼 코로나가 인류 역사에 얼마나 큰 사건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호조몬

 
나카미세도오리를 지나오면 큰 문을 볼 수 있습니다. 인왕문으로도 불리는 호조문입니다. 이 문의 양 옆에는 인왕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인왕상은 사원의 보물을 보존하는 역할을 하면서 나쁜 존재로부터 절을 지키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호조문 뒤편에 보면 큰 짚신 모양이 있는데 이 것이 액운으로부터 이 곳을 지키는 부적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층탑

우뚝 선 모습으로 그 위상을 떨치고 있는 오층탑, 기록상으로는 942년에 설립되었다고 하는 불교식 탑입니다. 이 곳 역시 전쟁에 의해 소실되었으나, 1973년 재건되었습니다. 이 탑 안에는 영세공양을 위한 위패가 1만기 이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일본과 우리나라의 다른 장례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터가 좋은 곳에 무덤을 파서 직접 유골을 매장하지만 일본은 위패에 이름을 적어서 제출하면 안치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간단하면서도 안좋은 점도 있는 것이, 지금도 극우 정치인들의 참배로 비판을 받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가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 이런 식으로 이름이 쓰여서 위패로 안치되어 있는데, 이 곳에는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조선 사람들도 자신의 의지와는 반하게 안치되어 있죠. 심지어는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사람 뿐만 아니라 동물도 안치되어 있어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곳 안에는 위패가 안치되어 있고 실제로 유족들이 공양을 하러 가는 곳입니다. 탑 안은 등록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센소지 본당

센소지 본당 (출처 : 도쿄 관광청 공식 사이트)

 
드디어 센소지 본당으로 입장합니다. 센소지에 대한 역사는 위에 설명드렸기 때문에 부가적으로 설명드릴 것은 없습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주인도 바뀌고 권력자들의 권력 다툼의 현장이 되는 등 수 많은 굴곡도 있었지만, 센소지는 1400년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절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센소지의 특징으로는 크게 경사진 지붕을 들 수 있습니다. 전쟁 이후에 재건되었지만 당연히 옛날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는데, 옛날에도 이 장대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고도의 공법이 사용되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기와도 무거웠는데 경사지게 놓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죠.
 
현재 쓰이고 있는 기와는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특수 티타늄을 사용한 기와를 올려놓았다고 합니다. 
 


관세음보살에게 참배 해보기!

 
센소지 본당 안에는 실제로 관세음보살이 모셔져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 모습이 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실제 관세음보살의 모양을 똑같이 본뜬 불상은 1년에 한 번 이 곳에서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습니다. 그 날이 되면 평소에도 붐비는 아사쿠사가 더욱 붐비게 됩니다.
 
센소지의 관세음보살은 번영과 안전, 학문의 성공, 건강, 재난 방지 등 여러가지를 이루어준다고 합니다. 일본에는 전문분야가 있는 신 (교통안전, 요리, 재해 방지)이 많은데 센소지 관세음보살은 이루어주는 것이 꽤 많네요. 이 정도면 종합선물세트라고 보아도 될 정도입니다.
 
관세음보살의 영향 덕분이었을까요? 나카미세도오리, 호조몬, 오층탑 등은 재해와 지진으로 무너진 적이 많지만 센소지만큼은 일본 역사상 최악의 재난이라고도 불리는 관동대지진때도 무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 때 무너지게 되죠)
 
전쟁으로 무너지는 와중에도 관세음보살은 다른데 보관해 무사했다고 하니, 관세음보살을 지키기 위한 일본인들의 노력을 감히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영엄함으로 수 많은 일본인들이 참배하러 가는 아사쿠사 센소지,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한국인도 이 곳에서 참배를 해도 문제는 없을까요?
 

사진 출처 : 도쿄 관광청 공식 사이트

 
정답은 참배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불상에 참배를 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신념에 따른 일이기 때문에 제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우리가 우려하는 전범에 대해 참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당 안에는 위패가 아닌 관세음보살이 모셔져있기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에게 학문과 건강, 번영과 안전을 빌고 싶으신 분은 안심하시고 인사를 해도 됩니다.
 
일본식 특유의 참배 방법이 있는데요, 먼저 통에 동전을 던진 뒤 가벼운 목례를 하고 박수를 두 번 치고 다시 목례를 하는 방법이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현장에 가면 많은 일본분들이 그렇게 참배를 하기에 똑같이 보고 따라하셔도 됩니다만, 마음만 제대로 담으면 되니 각자 편한 방법으로 참배를 해도 관세음보살이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향 맡기 / 오미쿠지(뽑기)

 
참배를 마쳤으면 본당 앞에 있는 향로에서 향을 맡으시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향은 장례식장에서 많이 쓰이지만 이 곳 향로에서 나오는 향은 영엄한 기운이 있다고 해 내가 더 나아지고 싶은 곳에 향을 쬐면 좋아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깨가 아파 낫고 싶으신 분은 향을 어깨에 가져가고,
머리가 좋아지고 싶은 분은 향을 머리에 가져가고
부자가 되고싶은 분은 향을 지갑에 가져가면 됩니다.
 
물론 효과는 그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지만, 잠시동안이라도 영엄한 기운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합니다. 
 

다음은 관세음보살의 메시지를 보는 뽑기입니다. 100엔을 넣고 쇠 통을 흔든 다음 나무막대기를 하나 뽑으면 그 곳에 번호가 한자로 쓰여져있는데, 숫자가 쓰인 통을 열어서 종이를 꺼내면 됩니다. 
 
뽑기 결과는 크게 
凶(흉)30
吉(길)35
末吉(말길)6
半吉(반길)5
小吉(소길)4
末小吉(말소길)3
大吉(대길)17
로 나뉘어져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흉'이 안좋은 것이고 '길'이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멀리까지 참배를 하러 오기에 절에서도 아무래도 기운빠지게 할 수 있는 '흉'의 비율은 적게 두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나 아사쿠사 센소지의 뽑기는 잔인할정도로 비율을 철저하게 지키기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흉'이 나왔더라고 절대 낙심 금지!
 
흉이 나왔다면 바로 옆에 있는 나무막대에 종이를 묶으시면 됩니다.
그러면 센소지의 관세음보살과도 '인연'을 맺게 되고, 
오히려 흉조를 빨리 보았기 때문에 점괘 내용을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행동에 조심을 한다면 그것만큼 행운이 또 없지 않을까요?
 
라고 아사쿠사 센소지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길'은 '흉'을 끄고나서야 나타난다는 말마따나 오히려 '흉'이 '길'을 향한 과정이라는 것이죠.
 
우리나라말로 하면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이렇게 카미나리몬으로 들어가 나카미세도오리, 호조몬, 오층탑, 센소지, 향로, 오미쿠지(뽑기)까지 전부 했다면 참배를 마무리했다고 보셔도 됩니다.
 
이제 맛있는거 먹으러 근처 야타이(노점상)이나 상점가로 가시면 되는 것이죠.
 
상점가에 대한 소개를 다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이 글을 보시고 아사쿠사를 조금이라도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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