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처음 왔을 때 심하게 아팠던 적이 있다. 아마 환절기에 옷을 제대로 껴입지 못해 감기에 걸린 것 같은데, 그 날 아침까지는 멀쩡하길래 어학교에 가려고 했지만, 집을 나서는 순간, "정말 1시간 동안 지하철을 탈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가다, 지하철 역 앞에서 "잘못하면 쓰러지지 않을까?" 라는 느낌이 든 순간, 직감적으로 병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병원을 가서 열을 재고 간호사가 한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열이 높은데, 여기까지는 어떻게 오셨어요?"
열이 39도가 넘어갔던 것이다.
성격이 둔한 나는 이것이 장점이 될 때도 있고 단점이 될 때도 있는데, 나의 모습을 예민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나를 걱정해주는 누군가가 옆에 있었더라면 열도 재주고, 요구르트도 사와주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내 상황이 적당히 심각한 것을 안 뒤 도움을 받고 병원에 갈 수 있었을텐데, 그런 사람이 없으니 39도의 몸을 이끌고 지하철까지 탈 생각을 했던 것이다.
자취할 때 가장 서러운 경험을 생각하라고 하면 대부분 아플 때를 떠올린다. 사람의 몸은 신체적으로 허약해지면 정신적으로도 약해지기 마련인데, 그럴 때 마음의 위로를 건네줄 누군가가 없을 때 더욱 쓸쓸하고 외로운 감정을 느낀다. 이번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도 어김없이 감기에 걸렸다. 환절기 때마다 으레 걸리곤 하니 놀랍지는 않지만, 두 가지 부분에서 쓸쓸함을 느낀다. 첫 번째는 마음 놓고 응석부리거나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없다는 것, 두 번째는 감기에 걸렸을 때 생각나는 한국 음식들을 전부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아플 때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열이 날 때마다 콩나물국을 찾는다. 음식이 부드럽기 때문에 삼키기도 쉽고 특히 콩나물국은 차갑게 먹어도 맛있는데, 차가운 콩나물국은 열을 식혀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콩나물국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공감해주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데, 열이 날 때 아이스크림을 찾는 사람이라면 그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콩나물국, 미역국 등.. 감기에 걸렸을 때 할머니께서 끓여주신 국들이 있었는데, 혼자서 맛있게 끓일 엄두도 나지 않을 뿐더러, 그럴 힘도 없다. 그렇게 침대 위에서 끙끙 앓다 보면 다시 기운이 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일본에 여행에 온 한국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사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감기약이다. 한국에서는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구할 수 있는 성분의 감기약이 일본에서는 일반 드럭스토어에서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본 사람들이라고 하여 약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일본 사람들은 감기에 걸렸을 때 무엇을 먹을까? 검색해보니 미소된장국, 야채스프, 달걀국, 죽 정도가 있다고 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한 것 같다.
근처 슈퍼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미소된장국을 먹는다. 한국에서 감기걸렸을 때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 미역국과 콩나물국은 없지만, 새로운 곳에서 보내는 삶에 '미소된장국'이라는 새로운 병 치료 음식이 자리잡았다. 이제 감기에 걸렸을 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하나 더 생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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